조현진 단원
어느 덧 6개월이 지나고 중급반은 졸업을, 기존의 초급반은 중급반으로, 초급반에는 새로운 학생들이 채워졌다. 마지막 수업은 특별하게 끝내고 싶었지만 시험을 앞두고 있어 평소와 다름없이 작은 꾸짖음과 잔소리 속에 마지막 수업이 끝났다.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말하며 눈시울을 붉히고 나를 둘러싸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니 매일 혼냈던 것만 생각이나 나도 눈물이 차올랐다.
학생들의 감사는 며칠이 지나도록 계속 이어졌고 자신들이 배운 단어를 모두 사용하여 나에 대한 감사함과 애정을 표현하며 행복을 비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메시지를 보면서 함께 했던 시간 동안 나의 진심이 전해진 것 같아 뿌듯하면서도 더 잘해주지 못한 아쉬움이 몰려왔다. 사랑한다는 말을 인사말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내가 준 것보다 더 과한 사랑을 주는 학생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마 사랑한다는 말이 자신들이 아는 최고의 표현이었겠지.
너무 조용한 학생이라 목소리를 듣기 위해 되도 않는 장난을 치며 말을 하게 했던 학생들, 항상 밝은 웃음과 함께 나를 부르며 달려오는 학생들, 많이 혼냈지만 그 다음날이면 다시 웃으며 인사를 해오던 학생들……. 사진을 보며 학생들과의 추억을 되짚어 보다보니 한 학기가 빨리도 지나갔다는 생각이 든다.
운동회 때 각 반마다 반티를 맞췄지만 어느 한 반의 반티만 입을 수 없어 학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반티를 계속 바꿔 입었다. 아쉬워하면서도 이해해주던 착한 학생들. 내가 어느 샌가 옷을 바꿔 입고 나타나면 환호를 지르며 바로 사진대형을 갖추었고 우리는 하루 종일 사진을 찍었다.
처음 만나 어색했던 그 추억 속에 학생들은 언제나 나를 우선으로 해주었다.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더니 그 다음날 선물을 해주기도, 오늘 선생님이 힘들어 보인다며 수업시간에 깜짝 이벤트를 해주기도 했고, 밖에서 만날 때는 선생님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물해주겠다며 호치민 곳곳에 나를 데려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감동적이고 기억에 남았던 것은 학생들이 열심히 한 글자씩 눌러쓴 편지다. 수업이 끝나고 무심한 듯 선물이라며 종종 건네던 학생들의 편지에는 나를 그린 그림도 있었고, 자신들의 이야기도 있었고, 나에 대한 애정도 있었다. (설마 내 눈을 피해 수업시간에 쓴 것은 아니겠지..!)
참 우리는 사진을 많이도 찍었다. 그리고 다시 사진을 보며 느끼는 것은 모두 해맑게 웃고 있다는 것이다. 꽉 찬 엘리베이터에서 사진을 찍겠다며 모두 얼굴을 들이밀기도 했고, 웃긴 사진을 찍자며 자신들의 쉬는 시간을 기꺼이 내주기도 했고, 지나가다가 들른 교실에서는 우리 반의 문법 선생님과 듣기/쓰기선생님이 모두 모였다며 기념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지금도 사진을 보면 꺄르르 거리는 우리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마지막은 제일 많이 혼냈고 유독 서로의 사이가 좋던 우리 초급오후반의 사진이다. 중급반에서 계속 볼 수 있는 학생들도, 아닌 학생들도 있지만 나에게 전해지던 이 반만의 활기찬 에너지는 잊지 못할 것이다.
돌아보면 수업분위기가 좋았던 날도 아니었던 날도 있었다. 학생들도 힘들겠지, 피곤하겠지 생각을 하면서도 나의 입은 잔소리를 하고 있었다. 조금만 이해해주고 기다려줄걸 생각도 들지만 그것마저도 추억으로 자리 잡았기를 바래본다.
호치민 생활에 적응을 하기도 전에 학생들을 만났고, 자연스럽게 내 일상에 스며든 학생들은 6개월 전과 다르게 함께 성장했으며 호치민에서의 모든 기억에 함께 하고 있다. 그리고 자음, 모음을 배우던 이 학생들이 어느새 대화가 가능하고 농담을 주고받으며 재밌어지던 찰나에 중급으로 올라가고 나는 다시 자음, 모음을 가르친다. 첫 정이 무섭다고 새로운 학생들에게 처음 만난 학생들과 같은 애정과 관심을 줄 수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다시 새로운 학생들과 새로운 날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