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한국국제봉사기구(KVO)에서 코이카와의 협력 사업인 에티오피아의 초등교육 역량강화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있어 11월 11일부터 2주간 KVO교육전문위원으로, 또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에티오피아를 가게 되었다.
지금은 교직을 떠났지만 그동안의 교육 경험을 바탕으로 또 다른 삶을 그리고 있는 나에게 에티오피아 교육 현장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 좋은 기회이기에 큰 기대감을 갖고 에티오피아행 비행기에 올랐다.
14시간을 비행하여 드디어 여명이 밝아오는 시간에 에티오피아에 도착하였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이는 에티오피아의 황녹색 대지의 정경부터 이국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공항 밖으로 나오니 늠름하고 멋진 현지인인 마이키 지부장이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마이키 지부장은 에티오피아에 KVO지부를 설립할 때부터 함께하였고 몇 년 전에는 한국 코이카 등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아디스아바바에서 자동차로 1시간 정도 걸리는 오로미아 주 비쇼푸트에 있는 KVO지부로 가는 도중 드넓은 대지가 눈앞에 펼쳐졌다.
노란 꽃이 만발한 들판이 보이기도 하고 주식인 인제라의 재료인 테푸라는 곡식이 무르익어 누런 들판을 이루고 있었다.
▶ 들판에 무르익은 테푸의 모습
오로미아로 들어서니 작은 도시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도로에는 특이하게 바자지라고 하는 파란색의 아주 작은 소형 차가 많이 다니고 길가로 작은 가게들이 늘어서 있었다.
▶ 오로미아 주 비쇼프투 지역의 거리 모습
도로를 지나 좀 더 들어가니 마침 일요일이라서 흰색 천을 머리부터 온 몸에 두른 사람들이 정교회에서 예배를 보고 나오는 모습과 마차와 소, 염소들이 지나다니는 이색적인 풍경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잠시 후 ‘KVO Korea Road’ 라는 푯말이 보였다.
12년 전부터 이 지역에서 KVO센터를 운영하며 지역 발전에 기여한 감사의 표시로 에티오피아 정부에서 2010년 비쇼푸트 시내에서 KVO지부로 가는 약 1.5km 길이의 도로 이름을 ‘KVO Korea Road’로 명명해 주었다고 했는데 직접 와서 보니 너무나 반갑고 감격스러웠다.
▶ KVO Korea Road
작은 돌들이 깔려있는 깔끔하고 넓은 거리를 지나 KVO센터로 들어섰다.
입구에서부터 키가 훤칠한 나무들이 늘어서 있고 그 사이로 센타 건물들이 언뜻 언뜻 보이는 것이 마치 시크릿 가든을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주변에는 수양버들 같이 늘어진 꽃나무와 열대 나무들이 어우러져 있는 모습을 보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 아름다운 정경 또한 KVO센터가 이 지역에서 깊이 뿌리 내린 오랜 시간을 충분히 느끼게 해주었다.
▶ KVO센터 입구의 모습
▶ KVO센터의 정경
센터에서 기다리던 KVO본부장, 부본부장이신 두 분 수녀님께서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셨다.
인사를 나눈 후 주변을 좀 더 둘러보니 아침 햇살이 강렬하게 내리쬐는데도 키가 크고 우람한 나무들이 늘어서 있어 깊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고 그 사이로 여러 건물들이 나란히 길게 들어서있다. 그 중에 사진으로만 보던 산뜻한 급식장과 따사로운 햇빛을 받고 있는 작은 잔디밭 운동장을 직접 보니 더욱 정겨운 마음이 들었다. 큰 정원 같기도 하고 숲 같은 이곳에서 지낼 이주일이 뜻밖의 선물처럼 더욱 기대되고 설레었다.
다음 날 시차 때문인지 한밤중에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이다.
잠을 더 청해 봐도 잠이 오지 않아 먼동이 틀 무렵 일어나 정원 숲 같은 센터 곳곳을 산책했다.
에티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는 해발 고도가 2300m이상이다. 그래서 아프리카라고 해도 초가을 같은 날씨이고 지금은 비가 오지 않는 건기 철이라고 한다.
낮에는 강렬한 햇빛 때문에 다소 따뜻하지만 밤에는 제법 추웠다.
날씨는 쌀쌀했지만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먼 이국 땅 에티오피아에서 맞이하는 첫 새벽은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것 같이 뜻 깊게 다가왔다.
올해 초부터 KVO센터에서 봉사하고 있는 이경헌 단원도 밥을 하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일어났다. 이곳은 고도가 높고 여전히 물과 전력이 부족하여 압력밥솥에 밥을 해도 늦은 밤 아니면 이른 새벽에 겨우 밥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아침부터 아이들이 잔디밭 운동장에서 슬리퍼를 신고 축구를 하기도 하고 마냥 즐겁게 뛰놀고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먼저 인사를 건네니 모두 스스럼없이 밝은 웃음으로 인사를 하고 다가와 손을 내민다. 나도 금방 친근감이 들어 활짝 웃으며 반겨주었다.
▶ KVO센터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이곳 초등학교는 8학년까지 있는데 수업이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뉘어져 있다고 했다.
그래서 오후반 수업을 받는 아이들이 미리 아침부터 이곳 센터에 와서 뛰놀거나 어떤 아이들은 영어, 체육, 미술, 컴퓨터 등 대학생 봉사자들이 진행하는 수업에 참여하다가 급식을 한 후 학교에 등교한다. 12시가 넘으면 오전반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달려와 급식을 하고 오후에도 운동장에서 뛰놀거나 방과 후 활동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른 아침부터 급식을 준비하는 직원들, 수업하러 오는 대학생들과 자유롭게 뛰노는 아이들로 인해 KVO센터의 아침은 더욱 활기가 넘쳐 흘렀다.
KVO회장님과 나도 급식 준비를 하고 있는 급식장에서 현지인 직원 분들의 도움을 받아 급식 준비를 함께 해 보았다.
그 지역의 빈곤층 아이들 500명에게 매일 하루 한 끼 무료급식을 하는 ‘500인의 식탁’은 에티오피아에 KVO지부가2005년 처음 설립되면서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해 오고 있는 지원 사업이다.
오늘의 메뉴는 에티오피아 주식인 인제라이다.
우리나라 증편처럼 맛이 시큼하고 메밀 전병 같이 생긴 지름이 50cm도 넘어 보이는 둥근 인제라를 둘둘 말아서 4등분을 하여 그 중 3조각을 접시에 펼쳐서 담아 미리 준비해 놓았다.
▶ 급식을 준비하는 모습
▶ 아이들에게 급식해 주시는 KVO회장님
10시 30분쯤 되니 오후반 수업이 있는 아이들이 급식실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급식장 입구에 있는 수돗가에서 비누로 깨끗이 손을 씻은 후 출석 체크를 하고 차례로 줄을 서서 급식을 한다.
미리 준비해 둔 인제라에 따뜻한 소스를 얹어 주고 감자 야채 조림도 곁들여 주니 한 끼 식사로 푸짐해 보였다. 나도 급식하는 아이들 틈에서 인제라를 처음 먹어보았다.
술떡 같은 증편을 좋아하는 터라 손으로 소스를 찍어먹는 인제라가 제법 입맛에 맞아 감자 요리와 곁들여 맛있게 먹었다.
나에겐 인제라 2조각으로도 충분한 식사였는데 3조각을 먹고도 더 먹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위해 직원분이 음식을 담아 가지고 급식장을 돌아다니면서 충분히 더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기도 하였다.
12시가 조금 넘어서부터는 오전반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이 시간은 급식장이 붐비는 시간이어서 안에 자리가 부족하면 급식장 밖에서도 아이들이 녹음이 우거진 나무 그늘에 오순도순 모여 앉아 즐겁게 식사를 하기도 하였다.
모두 식사 후에는 각자 자기가 먹은 접시를 들고 급식장 뒤편 수돗가에 가서 직접 접시를 씻거나 붐비는 시간에는 당번을 정해서 접시를 씻어 두었다.
▶ 급식전 손을 씻는 아이들
▶ 차례로 급식하는 아이들
▶ 먹은 접시를 직접 씻는 아이들
급식장에서 사진을 찍는 낯선 나에게 “포토”, “포토”하며 사진을 찍어 달라고 손짓을 했다. 그리고 저마다 놀라울 정도로 멋진 포즈를 취한다. 찍은 사진을 보여 주면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즐거워하고 행복해 했다.
먼저 스스럼없이 다가와 이름을 묻고 손을 내미는 호기심 가득한 아이들과 자유분방하게 거침없이 자신을 맘껏 표현하고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오히려 내 자신이 힐링이 되는 기분이었다.
또한 급식장에 걸려 있는 후원자 사진에 관심을 보이며 묻는 모습에서 후원자분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이유인지는 몰라도 이 곳에서 급식하는 아이들은 그 지역에서 가장 빈곤층 가정의 아이들이지만 아이들의 모습만큼은 너무나 티없이 맑고 활기 넘치는 것이 그저 놀랍고 신기하기만 하였다.
오후 1시가 지나니 대부분 아이들은 급식을 마치고 영어, 미술, 태권도, 컴퓨터, 음악 등 방과 후 수업을 하러 학습실로 가기도 하고 잔디밭 운동장에서 공을 차며 뛰놀기도 하였다. 또한 대안생리대 제작 교육을 받으러 온 사춘기 여학생들의 수줍은 미소로 인해 오후의 KVO센터는 햇살처럼 따사롭고 포근한 온기로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