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작게 인쇄

[해외]오지랖 넓은 군인 아저씨 - 콩고 현지 생생 칼럼 12

오지랖 넓은 군인 아저씨
ODA인턴 최명길
 

어렸을 때 학교에서 선생님과 함께 군인 아저씨에게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납니다. 예전에는 얼굴도 모르는 아저씨들에게 나라를 지켜줘서 감사하다는 글을 정성스럽게 쓰곤 했었습니다. 지금은 학교에서 그런 편지를 단체로 함께 쓰진 않겠지요.(제가 군인일 때 그런 편지를 받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추측한 것입니다. ^^;;) 이렇게 옛 기억이 새삼스럽게 난건 현지에서 우리 생활 터전을 항상 지켜주는 군인 아저씨 때문입니다. 진료소를 가거나 외부에 볼일이 있어서 나갈 때 지나치는 곳에는 밤낮 할 것 없이 항상 현지 군인 아저씨와 마주칩니다. 무엇을 지키며 무엇을 경계하는지는 정확히 모릅니다. 하지만 항상 그 자리에서 매우 카리스마 있는 모습으로 있습니다. 그리고 그 웃음기 없는 얼굴은 그 어떤 것도 압도할 수 있을 정도이며 실제 소총을 항상 옆에 두고 출입 인원들을 지켜봅니다.
반면에 그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은 어떨 땐 무서울 정도인데 저희가 지나가면서 인사를 할 때면 매우 밝은 표정을 보이며 손을 흔들어 줍니다. 또한 어떤 군인 아저씨는 한 옥타브 높은 목소리를 소유하고 있어서 반전의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하루는 건축 현장을 가려고 길거리에서 모토택시(오토바이 택시)를 잡아 요금 흥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모토택시 기사가 평상시보다 턱없이 높은 가격을 부르자 흥정이 길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근처에서 근무를 서고 있던 한 군인 아저씨가 다가와 무슨 일이냐며 물었고 저는 대충 상황 설명을 하였습니다. 군인 아저씨는 택시 기사와 현지어로 한참 실랑이를 하였습니다. 평상시보다 두 배 이상의 가격을 요구한 택시 기사 아저씨 때문에 말이 길어진 것입니다. 현지어(링갈라어)로 소통을 하는 것을 제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 군인 아저씨가 저를 도와주려는 마음은 어느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었습니다.
결국 타협점을 찾지 못했는지 군인 아저씨는 택시 기사를 돌려보내고 자신이 다른 택시를 잡아주겠다며 저를 안심시켰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별로 없던 터라 비싸더라도 그 택시를 이용하려고 했었는데, 그렇게 하면 그 군인 아저씨의 성의를 무시하는 것 같아 고분고분 말을 듣기로 하였습니다. ^^;; (절대 무서워서 그런 것 아닙니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모토택시가 오지 않는 것입니다. 군인 아저씨는 조금 당황하는 모습인 것 같았고 저도 시간이 없었던 터라 마음이 조급하여 그냥 걸어가다가 잡겠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아저씨는 저에게 미안하다며 아까와는 다르게 기죽은 모습이었고 그런 모습을 본 저는 안쓰럽고 너무 고마워서 두 손을 꼭 잡아줬습니다. 그리고 감사하다는 말을 몇 번인지 모를 정도로 내뱉으며 아저씨와 작별(?)인사를 나눴습니다.

현지 온 후부터 누군가에게 도움을 조금이라도 받으면 그 도움을 준 누군가는 항상 돈을 요구하였습니다. 항상 그럴 때마다 저는 돈을 주지 않고 가방에 있는 사탕이나 간식거리를 조금씩 주곤 하였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일도 현지인들은 도움이라는 순수한 마음으로 다가오지 않고 돈이라는 물질로 저를 생각하고 다가오는 것이 현지 실정입니다. 그래서 일부러 돈은 절대 주지 않으며 타당한 경우에만 지급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군인 아저씨는 저와 대화도 몇 번 나눠보지 않아 친하다고 볼 수도 없는 상황에서 순수한 마음으로 저에게 다가와 도움을 줬습니다. 그 군인 아저씨가 오지랖이 넓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판단하기 어려운 점은 제가 당사자로서 그 자리에서 느낀 그때의 그 감점을 솔직하게 표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지랖이 넓든 좁든 누군가에게 바라는 것 없이 도움을 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요즘 같은 한국 사회에서는 더욱 느끼기 힘든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도움을 주고자 현지에 왔는데 자꾸 사소하게나마 현지인들에게 도움을 받는 것 같아 제 마음은 더욱 풍요로워집니다. 물질보다 마음이 앞서는 그 군인 아저씨처럼 모두가 순수한 오지랖이 넓어지는 날이 오길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코멘트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