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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종결되지 않은 비극 두번째 이야기 - 콩고 생생 칼럼 6

종결되지 않은 비극 - 콩고 2차 전쟁부터 지금까지
ODA 인턴 신희철
 
1998년에 일어난 제2차 콩고 전쟁은 앞의 1차 전쟁과는 달리 내전이 아닌 아프리카 여러 국가들이 참전한 대규모의 국제전이었습니다. 우간다-르완다-부룬디 3국이 콩고를 침공하게 되면서 카빌라는 주변 국가들에게 파병을 요청하게 됩니다. 결국 앙골라, 짐바브웨, 나미비아, 차드의 파병이 결정 되면서 전쟁의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져갔습니다.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들의 참전은 물론, 프랑스의 지원을 받은 차드의 참전은 단지 이 전쟁이 아프리카에 국한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전쟁 당시 르완다의 대통령인 폴 카가메가 권력을 잡을 때, 르완다 내 프랑스인을 내쫓는 등 프랑스 정부를 배척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프랑스 군대가 콩고 전쟁의 배후에서 개입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2차 콩고 전쟁은 아프리카내의 세계대전으로까지 불리기도 합니다. 결국 이 전쟁은 2002년 평화 협정이 체결되기 전까지 콩고는 물론 전쟁에 참여한 국가와 주변 국가들에게 까지 막대한 피해를 입혔습니다.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었던 2001년 무리한 전쟁으로 인해 계속 지지율이 떨어진 로랑 카빌라는 결국 그의 심복에게 암살당하고, 현재 콩고 대통령이자 로랑 카빌라의 아들인 조셉 카빌라가 권력을 계승했습니다. 조셉 카빌라는 아버지와 달리 적극적으로 종전을 주도하여 평화 협정을 체결하였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외국군들이 돌아갔어도 전쟁 때 발생한 여러 자체 무장 세력들은 해체되지 않았습니다.
<사진> 신희철 인턴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최명길 인턴과 직원들

현재 KVO 진료소에서 경비 업무를 맡고 있는 장-피에르Jean-Pierre씨와 제프Joseph씨도 전쟁 당시 망고보 의용군의 지역 대장으로 활동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당시 많은 콩고인들은 남녀노소 구별 없이 내전 당시 자신의 가족과 자신의 지역을 지키기 위해 결집하였습니다. 이들의 말을 들어 보면 전쟁 당시 아무런 무장도 갖추지 못하고 있었기에 소총 대신 대나무를 깎아서 만든 창과 전통적인 사냥에 쓰이는 활과 화살로 무장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자신들의 마을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무장한 사람들과는 다른 목적을 가지고 발생한 무장 단체들은 전쟁 이후에도 콩고의 심각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르완다에서 투치족의 보복을 피해 콩고로 도망친 후투족 세력들의 무장 단체 즉, 르완다 해방 전선의 무장단체들은 수시로 민간인들을 공격하였습니다. 이런 르완다 해방 전선에 저항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무장하고 저항한 부족들은 전쟁으로 피폐해진 삶 때문에 혹은 자신들을 스스로 방어하기 위해 원래 사이가 좋지 않았던 부족들을 공격하고 약탈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불법적인 무장 단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감소하기는 하였지만 종전이 선언 된지 10년이 지나도 콩고 민주 공화국 심각한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자원이 부족한 한국의 입장에서는 풍부한 광물 자원이 매장되어 있는 콩고의 환경이 축복 받은 것으로 보이겠지만, 이 많은 광물 자원들 때문에 현재까지 콩고에는 많은 불법 무장 단체들이 존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즉, 정부가 관리하고 개발하여 국가의 자원으로 써야 할 자원들을 불법 무장 단체들은 정부를 대신하여 관리하고 세금을 거두어갔습니다. 활발한 화산 활동으로 인해 천연의 관광 자원인 니라공고 화산이 있는 콩고 민주 공화국의 대표적인 여행지인 동부의 고마Goma지역이 여행지 위험 지역으로 분류되는 것도 콩고 정부가 반군으로 규정한 불법 무장 단체들의 근원지이기 때문입니다. 이들 불법 무장단체들은 국경을 끼고 바로 옆에 위치한 르완다와 우간다 정부의 지원을 받으면서, 끊임없이 콩고 정규군. UN군과 충돌하고 있습니다. 르완다와 우간다는 UN의 권고와 다른 국가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반군들이 소유하고 있는 자원들과 그로 인해 생긴 수입들을 지속적으로 상납을 받고 있기에 반군에 대한 지원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많은 콩고인들이 르완다와 우간다에 커다란 반감과 증오를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불신과 적대감은 소규모의 충돌이나 대규모의 전쟁이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을 가지게 하여 아프리카 전체의 평화와 안보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무장단체들은 자신들의 불법적인 민간인 지역 점령 및 국가 자원 관리로 인해 받게 될 비난과 주민들의 저항을 막기 위해 민간인 학살, 여성들에 대한 성범죄, 소년병 양성 같은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아직 인격이 형성되지도 않은 소년과 소녀들을 전쟁에 동원하여 상대방을 증오하고 죽이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성범죄를 당한 여성들은 가정에 다시 수용되기 어려운 콩고의 전통사회 때문에 많은 콩고의 가정과 사회들이 붕괴되면서 사회적 혼란은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부족 단위로 화목과 협동을 강조하는 콩고의 전통 부족 사회가 무너지면서 경제적 손실 이외에도 콩고인들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유년 시절부터 많은 전쟁을 경험한 콩고인들은 이방인들을 쉽게 믿지 못하고 불신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외국으로 부터 지원과 도움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콩고는 외국 NGO나 외국 기업들이 활동하기에 불리한 법과 행정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법과 행정적인 문제 이외에도 외국인을 대하는 태도가 신뢰와 협력 보다는 불신과 의심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전쟁 복구 및 사회 복지 및 기간 시설의 정비 사업은 지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르완다와 우간다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반군들과, 그런 반군 출신으로 정부의 포용 정책에 따라 관료가 된 정치인들의 유착관계들로 콩고 민주 공화국은 아직까지 평화라는 단어와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하지만, 올해 처음으로 ICC(국제형사재판소)에서 콩고 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과 소년병 양성, 여성에 대한 성폭행을 자행한 토마스 루방가가 14년의 형량을 선고 받았습니다. 그가 저지른 죄악에 비하면 너무나도 가벼운 형량이지만, 무명무실 했었던 ICC가 앞으로 전범자들에 대한 처벌 의사를 보였다는 것에 의의를 둘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2012년 10월 13일에 킨샤샤에서 개최된 프랑스어권 국가 정상회의에서도 콩고 동부 지역 반군에 대한 단호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콩고 정부의 입장은 지금까지 방치하고 있었던 사태에 대해 해결 의지를 보인 것으로 간주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콩고 정부와 국제 사회가 이런 혼란과 정의의 부재를 심판하고 단죄할 수 있는 능력과 관심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콩고 정부의 행정 장악 및 체계화되지 못한 군사력이라는 내부적인 요소와 역사 속에 잊어져 가는 전쟁이라고 불릴 만큼 국제사회의 이슈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한국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로 콩고 민주 공화국의 역사와 콩고인들의 삶을 알기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한국국제봉사기구가 이 곳 키상가니에서 말라리아 진료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이유는 말라리아로 고통 받고 있는 아이들과 임산부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직접적인 도움으로 콩고인들의 아픔을 치유하면서 스스로의 상처를 이겨낼 수 있는 협력자가 될 것입니다. 아프리카의 속담에 “혼자가면 빨리 갈 수 있다. 그러나 더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콩고와 마찬가지로 전쟁으로 인한 아픔을 겪은 우리가 이들의 훌륭한 협력자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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