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당신의 안내자가 되고 싶습니다.
KVO 인사동관광안내소 통역봉사단(삼청동안내소)
권미예
‘ May I help you? '
매주 4시간,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안내소 안에서 건네는 인사.
누구나 알고 있는 대표적인 영어 중 하나이지만 가장 어렵고도 그 순간만큼은 모두에게 미소를 짓게 해주는 말이기도 하다. 학창시절 처음 배워 이젠 자다가도 외울 수 있을 만큼이지만 환하게 웃으며 다가오는 외국인을 향해서는 어쩜 그리도 입술을 뗄 수가 없었는지 모른다. 심장은 어느새 온몸을 돌아다녀 내 귀에 달라붙었고, 들려오는 심장박동소리에 질문을 해오는 관광객의 말소리도 들리지 않아 뭔가에 맞은 듯 순식간에 멍해졌던 나의 첫 시간들을 생각해보면 새삼스레 얼굴이 붉어지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외국인들에게 안내하는 선배 봉사자들의 당당하면서도 여유로운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빛나는 눈으로 바라봤던가! 그렇게 부족했던 외국어실력에도 봉사에 대한 열정만을 안고 주춤거리듯 KVO통역자원봉사단원이 된 지 어느새 1년 8개월이 되었다.
많은 곳에서 묵묵히 봉사하는 분들에 비한다면 감히 봉사했다고 말할 수 없는 짧은 기간이겠지만 내겐 무엇과도 비길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을 배우게 된 시간이었고, 베푼 것보다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어 온 날들인 것 같다. 교수자리를 은퇴하고 세계 일주를 하고 있다는 캐나다인, 학회 참여 후 서울을 둘러보려는 말레이시아인,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스키를 타러 방문한 대만인가족, 간만의 휴가를 즐기러 온 일본인과 영국인의 커플, 젊은이만의 특권을 뽐내며 부산에서부터 올라왔다는 미국인 배낭족들....다양하고도 다양한, 수많은 안내소를 찾는 사람들과의 만남. 첫 인사부터 안내소를 떠나는 순간까지 짧게는 몇 분도 채 되지 않지만 그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따뜻함을 나누게 되는 것이 우리 봉사자들의 특권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그 중에서도 입양가족들의 만남에서 통역을 맡았을 때는 가슴 한 구석에서 일어나는 감동을 이루 말로 전할 수가 없다. 멀리 떨어져 가족을 얼마나 그리워했으며 애타게 기다리다 마주했을지...서로 말을 할 순 없지만 얼굴만 봐도, 그저 한 자리에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다면 소소한 감정조차도 다 전해주고 싶었던 그 때를 기억한다.
마음 속 깊이 인사동에서의 시간과 경험들을 안고 삼청동안내소로 자리를 옮긴지 이제 두 달이 되어가고 있다. 비록 천막 속에서 여름을 알리는 더위와 장마철을 함께 겪어나가지만 한 마음으로 자리를 지키고 안내하는 다른 봉사자들, 팀장님들이 있고 무엇보다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한 사람의 관광객이 있기에 그러한 더위도 빗소리도 이길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부푼 기대와 함께 인생의 일부를 보내기 위해 한국을 선택했고, 그 중에서도 우리가 서있는 이 곳, 인사동과 삼청동을 수첩에 담았을 것이다. 그들이 여행자이든 사업가이든 낯선 땅에서 처음 느껴지는 공기를 마시며 발을 딛는 순간 큰 숨을 내쉬었으리라. 나 역시 타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들도 떠있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나를 따뜻이 맞이해 주리라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기는 곳, 바로 안내소이다.
너무나 짧은 만남이지만 그 순간으로 단 한 사람의 발걸음이 가벼워질 수 있고,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내가 있을 수 있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 순간도 ‘당신이 이곳에 온 것이 큰 기쁨이고 모든 날들이 행복하시길 바라는 마음’ 으로 안내하고 있을 봉사자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는지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