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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작은 부탁_DR콩고 인턴 칼럼

작은 부탁

콩고민주공화국 최명길 인턴
 
찌는 듯한 날씨에는 외출을 삼가는 것이 보통 우리네의 모습이다. 하지만, 365일 이글거리는 태양아래의 열대지방 콩고민주공화국(이하 DRC), 이 곳의 현지인들은 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각자의 삶에 열심이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필사의 투쟁이라 할 수 있겠다. 평생을 더운 곳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한들 태양의 열기를 못 느끼겠는가. 생계를 위한 본능이 태양의 열기보다 강렬하기에 그것을 이겨내고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단순히 진화론적인 방향만 고려하여 유전적으로 몸이 적응을 해버린 것이라고 생각하는 전문가들이 있다. 물론 맞는 말이기도 하나 그건 생계문제 측면에서 극히 일부의 영향일 뿐이다. 현지 빈곤층은 하루라도 게으름을 피우면 자신을 포함해 자식들을 먹일 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움직이고 또 뛰는 것이다.

우리 KVO 새 진료소를 가는 길에는 그렇게 부지런히 움직이는 다양한 사람들이 많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뛰어다닌다. 다양한 생활용품을 파는 남자아이들, 간단히 즐길 수 있는 간식을 판매하는 아주머니, 진흙 벽돌을 만들어 파는 아저씨, 사탕수수를 수확하여 등에 짊어지고 나르는 할머니, 강에서 생선을 잡아 즐거운 마음으로 집에 가는 아주머니들 등이 그런 사람들이다.
 
 
특히 매일 같은 자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Kasaba(카사바_퐁듀 알뿌리 튀김 음식)를 파는 아주머니가 계신다. 평소에 그 아주머니는 무뚝뚝한 사람들과는 달리 나에게 항상 밝은 인사를 한다. 그렇다고 나에게 카사바를 판매하기 위함도 아니고 돈을 요구하기 위함도 아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외국인이 자기 나라에 와서 무료로 도와주는 것이 그저 감사해서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 밝게 인사하게 됐다고 한다. 우리 KVO의 활동이 그 아주머니에게는 직접적인 도움이 안 닿는데도 말이다. 그 감사함에 나 또한 감사를 느끼는 긍정 시너지 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하루는 그 아주머니가 나에게 할 말이 있다며 어렵게 말을 꺼냈다. 며칠 전에 남편이 사고로 숨졌다는 것이다. 본래 남편이 바깥에서 여러 잡일을 하며 먹을 것을 구해오고 자신이 그 조그마한 자리에서 카사바를 판매하여 생계를 유지하였는데, 남편이 없는 상황에서 여러 명의 자식들을 카사바 판매만으로는 키우기 어렵다는 것이다. 굳이 나에게 생계의 어려움을 말하지 않아도 오래 지켜본 사람으로서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앞으로 어떻게 생계를 꾸려나가야 할지 앞이 막막하다는 아주머니는 말씀을 하시다 그만 눈물이 쏟아지고 말았다. 눈의 양끝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은 내가 본 그 어떤 눈물보다 안타까웠다. 간신히 눈물을 훔친 아주머니는 나에게 조심스럽게 부탁을 하였다. KVO에서 하는 활동 중에 아주 작은 일이라도 있으면 자신을 고용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돈이나 음식을 요구할까봐 항상 잠가뒀던 마음속의 자물쇠가 자연스레 열리는 것 같았다. 겪어보지 않은 이들은 모를 것이다. 무턱대고 돈과 음식 같은 물질을 요구하는 현지인들이 얼마나 많은 지를.. 그리고 그 요구에 질려 어느새 마음속에 단단한 자물쇠를 채워 아무도 열지 못하게 했었다는 것을..

아주머니의 간곡한 부탁에 나는 머릿속에서의 계산이 아닌 마음으로 대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당장은 아주머니의 부탁을 들어줄 수가 없지만, 반드시 자리가 생기고 그 자리에 아주머니의 능력이 맞는다면 고용을 하겠노라고 약속을 하였다. 아주머니는 감사함에 다시 한 번 눈물을 훔쳤고 나는 위로의 말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이 아주머니와 같은 사정의 현지인들은 수두룩하다. 그 모든 사람들을 나 혼자, 그리고 KVO가 수용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도움이 늘어나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열심히 뛰는 현지인들 옆에서 함께 뛰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라톤과 같이 결승점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하지만 중간 중간에 도움의 손길은 있다. 그 도움의 손길이 늘어날수록 결승점은 뚜렷해지고 가까워질 것이다. 난 우리 모두 결승점에서 선수의 완주를 기다리며 초조해 하지 않고 함께 옆에서 부축을 해주며 뛰어보는 건 어떨까하고 생각해본다. 결승점이 가까워지는 이상한 마라톤을 상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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