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남은 불량한(?) 모기장 하나
모기장 배포가 끝난 지도 어느새 한 달이 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말라리아를 예방할 수 있는 모기장을 배포하고 나서 느낀 그 만족감과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저를 더욱 따뜻하게 만들어줬던 나눔이 있었습니다.
만장의 모기장을 배포할 때 불량품이 총 4개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그 불량품들을 배포하지 않고 따로 보관을 해뒀었습니다. 그것들은 말이 불량품이지 거의 새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을 배포 하지 않았던 것은 작은 벌레 몇 마리가 모기장 포장지 구멍으로 들어가 죽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는 제가 받기 거북스럽다고 생각되는 것은 다른 사람도 똑같이 느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모기장 4개를 발견한 후 저희는 사무실로 가져와 모기장에 있는 불순물들(벌레 사체)을 하나도 남김없이 탈탈 털어내고 다시 곱게 접어 포장지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 의논을 하였습니다. 그런 후 주위에서 저희를 위해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하나씩 나눠주기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가장 기억에 먼저 떠오른 사람은 매일 저희 사무실 앞을 말끔히 청소해 주시던 할아버지였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건물 부지의 주인에게 일정 금액을 받고 청소를 해주는 분이었습니다. 이 곳에서는 약 한 달에 한 번씩 청소해주는 사람이 바뀌는데, 그 할아버지는 제가 현지에 와서 처음으로 뵀던 분이었습니다. 그 분은 매우 상냥하고 친절하였습니다. 제가 현지어(불어)를 못하자 다음 날부터 직접 영어를 조금씩 배워 와 저에게 한마디씩 하셨습니다. 그런 후부터 항상 종이에 영어를 적어 들고 다니시면서 공부를 하셨습니다. 그 모습에 저 또한 현지어 공부에 더욱 힘입어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분은 어느 누구보다 자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청소하는 것을 감시하는 사람이 없는데도 한눈팔지 않고 일을 하였습니다. 마치 자기 방을 청소하듯이 저희 사무실과 숙소 앞을 청소해주었습니다. 물론 월급을 받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분들과는 달랐습니다. 다른 청소 직원들은 그 할아버지처럼 일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욱 인상에 남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할아버지께서는 모기장을 가끔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규칙상 사무실에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분에게 무조건 드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배포하는 날 진료소로 찾아오시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결국 오지 않으셨습니다. 드리고 싶었지만 안타까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발견한 불량품(?) 모기장을 반드시 드리고 싶었습니다. 폐기처분을 하는 것보다는 그 편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한 달에 한 번씩 바뀌는 근무조 때문에 어디에 계시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우연히 마주치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주기로 마음먹은 3일 후에 몇 달동안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그 할아버지와 마주쳤습니다. 정말 반가운 나머지 두 손으로 그 할아버지 손을 마주잡고 악수하면서 호탕한 웃음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반가운 할아버지에게 저는 서툰 현지어로 잘 지내시는지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또한 저를 매우 반가워하며 활짝 웃으셨습니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 일하시고 계신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한참 담소를 나눈 후에 다음 날 아침에 시간이 되면 사무실로 방문을 해주시라고 부탁드렸습니다. 그리고 모기장을 하나 드리겠다고 하였습니다. 다른 현지인들 때문에 모기장 드리는 것은 비밀로 해주시라고 부탁하였습니다. 할아버지는 매우 기뻐하며 알았다며 걱정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뵙기를 기약하고 헤어졌습니다. 저는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너무나 신기하고 기뻤습니다. 어떻게 그곳에서 그렇게 우연히 마주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봐야 될 이유가 생겼을 때 그렇게 마침 뵐 수 있었던 것인지. 아무튼 그 성실하시고 친절하신 할아버지에게 무엇인가 작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겐 너무나 뿌듯하였습니다.
다음 날 할아버지는 약속한 시간에 정확히 사무실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비밀로 해달라고 해서인지 검정 봉투를 품속에서 꺼내어 건네 드린 모기장을 정성스럽게 접어 넣으셨습니다. 그리고 잠깐 동안 이야기를 나눈 후 할아버지는 감사하다는 말을 조금 과장하여 백번정도 하시고는 사무실을 떠나셨습니다. 저는 모기장을 보물인 것처럼 품속에 넣어 기뻐하시던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제가 여기까지 와서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한 의미를 새삼 되뇌었습니다. 보물이라는 것이 반드시 반짝이는 보석만은 아니라는 것도 글이 아닌 직접 피부로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 부자 ODA 인턴 최명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