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I3의 발로 뛰는 봉사!!>
작성자 : 권선재 백지원 이언호(울산대)
저희는 평소에 가난한 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 모인 FBI3 ( Fair trade and travel Boys and girls in Indonesia for 3 weeks) 입니다.
저희는 ‘일반적으로 하는 센터에 가는 봉사활동이 아니라 저희가 가진 재능으로 할 수 있는 봉사활동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러던 중 생산자에게 정당한 금액을 주고, 소비자에게 정당한 가격으로 팔자는 공정무역을 발견하였고
제3세계의 가난한 나라의 생산자들이 상권을 잃어버려서 물건을 만들어도 제 값을 받지 못하고, 일을 하여도 정당한 노동의 댓가를 받지 못하는 현실에 분노가 일어나 ‘이 두 가지를 접목하면 또 다른 봉사활동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이 봉사활동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3세계 나라들 중 대상국을 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저희는 이미 한 번 다녀 온 경험이 있는
인도네시아를 선택하고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인도네시아로 출발하기 2개월 전부터 두루뭉실하게 알던 공정무역과 공정여행(이하 공정무역여행)에 대한 개념을 좀 더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에 대한 동기는 분명했지만, 단지 돈만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필요를 지혜로운 방법으로 돕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저희는 그들과의 소통을 위해 현지어인 바사어(인도네시아어)를 공부하고, 그들의 종교를 배려한 옷차림과 행동주의사항을 공부하며, 관광지가 아니라 필요가 보이는 지역을 대상으로 현지인을 배려하고 생각하는 여행을 진행하였습니다.
드디어 출국이 이루어지고 첫 번째 도시인 자카르타의 공항에 떨어졌을 때는 영어를 쓰는 사람이 많이 있어서 소통에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거주했던 곳은 중심에서 떨어져 있어서 사람들이 바사어를 사용하였는데 2달간 배운 짧은 바사어로는 소통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에 대한 기억 중에는 물건을 사러 갔을 때, 말은 어떻게든 할 수 있었지만 알아듣지를 못해서 손짓 발짓과 계산기를 이용해 물건을 샀던 기억이 있습니다.
정보가 부족했던 저희는 자카르타라는 수도에서 인도네시아의 전통공예품을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중 우연히 야식으로 먹을 식료품을 사러가다가 코타역 주변에 있는 야시장을 발견하였습니다. 이곳은 인도네시아 여러 지방에서 올라온 상인들이 자판을 벌여놓고 옷과 장신구와 여러 가지 물품들을 팔고 있었는데 저희는 이 시장을 좋게 평가하여 매일 밤에 이 시장을 들려 시장조사를 하였습니다.
한 날은 야시장이 큰 규모로 열렸고, 거리에서 공연을 하는 사람도 많았었습니다. 그중에서 저희는 몇 년 전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났던 쓰나미 피해 모금활동을 하는 악사들을 만나게 되었고, 생활비 일부를 모금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시장조사를 하러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다시 그 모금현장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쉬고 있는 악사들 중 한명이 모금했던 저희를 기억하곤 저희에게 다가와 같이 놀자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저희는 처음엔 어리둥절해 하고 어떻게 해야 될까? 했었는데 그들이 먼저 자연스럽게 연주하면서 노래를 불러주고 또 신청곡도 받아주며 분위기를 이끌어 갔습니다. 악사들은 연주하고 저희들은 노래를 부르고 거기에 있는 사람들 모두 함께 춤을 추며 그 날의 밤을 보냈습니다. 그들과 함께 했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때 기억으론 말이 잘 통하지 않았지만 마음과 마음으로 그들과 소통했었기에 더 각별했던 것 같습니다. 그 아름다웠던 밤을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거처를 옮길 때, 가장 힘들었던 점은 그나마 익숙해졌던 곳을 떠나서 낯선 곳에서 그 전 도시에서 처음 했던 작업을 똑같이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희가 머무를 곳을 찾아야 했고, 지도를 구하고 시장을 찾으러 다니고 시장 조사를 하나부터 열까지 다시 하여야 했습니다. 수도에서 지방으로 내려갈수록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 힘들어서 길을 묻고 싶어도 언어의 장벽에 부딪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리나라 사람들과 달리 외국인들을 보면 상냥한 미소와 친절한 자세로 자신이 아는 것 내에서 최선을 다해서 가르쳐주려고 노력하는 현지인들 덕분에 많은 도움을 얻었습니다. 그 예화로는 반둥에 처음 갔을 때 마라나타 대학교 근처에서 숙소를 찾으러 다닐 때가 있었습니다. 밤이 늦도록 방을 구하지 못해서 본의 아니게 외박을 할 뻔 했는데 데이트를 나가던 오토바이 탄 커플이 한 시간이 넘도록 같이 돌아다니며 방을 구하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 친절한 현지인들의 모습이 여행이 끝난 지금까지도 눈에 선합니다.
열심히 하루 일정을 소화하고 배가 출출하여 간식을 사러 나갔을 때가 떠오릅니다. 인도네시아어로 화폐단위와 숫자에 대해 막 외우고 나가서 물건을 사러 갔는데 저희가 외국인이라고 터무니없이 비싸게 부르는 것이 아닙니까? 그들은 한국인인 저희가 얼마나 흥정을 잘하는지 몰랐나봅니다. 그래서 저희가 막 외운 숫자와 화폐단위를 바사어로 얘기하기 시작하니깐 현지인들이 놀라면서도 한편으로 씨익 웃으면서 현지인들의 가격으로 물건을 주었습니다. 그렇게 바사어로 흥정하면서 얻은 자신감으로 물건을 사러 가는 곳 마다 바사어로 물건을 샀고, 그럴 때마다 현지인들은 귀여워하면서 엄청 좋아했습니다. 외국인이 우리나라말을 쓸 때 귀엽게 보이듯이 아마 그렇게 느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렇게 조금씩 바사어를 익혔고, 다른 맴버가 상황에 맞는 인도네시아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또 다른 맴버가 그 말을 보완하며 저희의 여행은 계속되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조금씩 익힌 바사어의 능력은 발리에서 현지인들과 소통할 때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현지인이 운영하는 인도네시아 전통 악세서리 집에서 물건을 보러 들어갔는데 짧은 영어와 바사어와 손짓 발짓으로 그들과 친해져서 같이 사진을 찍고, 그들에게 귀고리, 팔찌를 만드는 법을 배우고 실제 같이 만드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들에게 또 오겠다고 약속을 하고 명함을 받기까지 했으니 얼마나 친해졌었는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아~! 이건 이번 여행 후 알게 된 팁인데 시장조사를 할 때 또 현지인의 생활을 근접하게 경험할 때 좋은 방법은 오토바이인 것 같습니다. 저희와 같은 방법으로 거래를 하고 싶어 하신다면 말입니다. 관광지에는 외국인의 취향에 맞춘 세련된 디자인과 다양한 물건들이 있었지만, 저희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손으로 직접 만들고 생산하는 곳을 보고 그들의 물건을 소비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중교통이나 차를 이용하는 것도 좋지만 오토바이가 구석구석까지 이동하고 즉각적으로 물어보기 편한 것 같습니다.
이 오토바이를 이용하여 현지인들에게 묻고 물어서 찾아 들어간 족자의 은세공 마을을 발견했을 때는 정말 기뻤습니다. 은을 직접 녹이고 형태를 만들어 한 땀 한 땀 만들고 있는 장인 할아버지들을 봤을 때는 몸에 전율까지 왔습니다. 숨겨놓은 보물을 찾았다! 라는 느낌이었습니다. 은세공 마을의 대로변에는 은제품을 파는 가게가 많았지만, 가게를 지나서 마을로 들어가다 보면 온 마을이 가게에 은제품을 제공해주는 공급처였습니다. 여러 집들을 돌아다니면서 은제품을 만드는 모습도 보고, 바가지 요금을 벗겨낸 금액으로 물건을 살 수 있었던 경험이었습니다. 중간단계를 겪으며 가격이 불어버리는 거품을 빼내어 생산자에게 직접 주고, 저희도 비교적 원가대로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았던 이야기는 자카르타 야시장에서의 이야기입니다. 저희는 이런 생각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돈이 아닌 연필과 먹을 것을 주자, 어린아이에게 어려서부터 돈을 주는 것은 그 아이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아이를 망치는 일' 이라는 생각 말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아이들이 다가올 때는 돈 대신 연필과 사탕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자카르타 야시장에서의 아이들은 그 사탕과 연필을 거절하고 자꾸만 돈을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결국 저희는 아무것도 주지 않고 지나왔는데 조금 후에 그 아이를 편의점에서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외국인이 사먹기에도 부담스러운 고가의 사탕을 사먹고 있었습니다. 구걸 받은 돈을 가지고 말입니다. 그 순간 저희는‘가난한 아이들에게 돈을 쥐어주는 것만이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라는 생각에 확신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동냥하며 쉽게 번 돈은, 그렇게 쉽게 쓰여지고 계속적으로 길거리 생활이 반복 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동냥으로 계속 이어지는 이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것은 교육받을 수 있는 기회와 정부의 교육지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시적으로 돈으로 아이들을 도와주고 스스로 만족하는 일회성 후원이 아니라, KVO의 캠페인처럼 장기적으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그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봉사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현지인들에게 직접 봉사활동을 한 것이 아니지만, 공정무역여행을 통하여 현지인들이 정당한 물건의 가격을 지불받고 또 현지인들의 가게에 매출을 올려 현지인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었고, 또한 현지인들의 고충을 듣었으며, 돌아와서 그 곳의 현실을 주변에 알렸던 모든 활동들이 앞으로의 우리 삶에서 필요가 있는 사람들을 그들 중심으로 생각하게 할 수 있었던 의미 있던 봉사활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